인도네시아(풍경외 기타 사진들)

연합군 포로 수용소와 위안부 숙소

초당(草堂) 2014. 10. 1. 00:45

 지난 주말 특별하게도 인도네시아 스마랑 지역에 있는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연합군 포로 수용소및 일본군 위안부 숙소를 둘러볼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그동안 말로만 듣던 일본군 위안부의 숙소를 둘러보고는 무서움과 두려움에 떨면서 저들에게 성노리개가 되었을 어린 소녀들의 애환과 참상이 눈에 어린거리고 또한 포로감시원으로 있다가 전범으로 처형될수 밖에 없었던 조선의 젊은 청년들.

  

인도네시아 스마랑 지역에 있는 연합군 포로 수용소및 위안부 숙소 정문 입구.

이곳에 주둔중인 군부대의 사전 허가를 받고 영내를  통과해야 하는 지역에 있으며 입구에는 허가 없이 출입할수 없다는 안내문이 걸려있다.

 

현재도 일부 시설을 군교도소로 활용중에 있어 경비가 삼엄하고 방문객들을 군인들이 따라 다니며 감시(?)를 하고 있다

 

본 포로 수용소의 면적은 8 ha( 24,000평) 정도이며 네덜란드에 의해 1835~1845년 사이에 건설된 군사시설이였음.

태평양 전쟁시 일본군이 진주하여 포로 수용소로 개조하여 약 3,000명 정도의 연합군 포로들을 가둔곳임.

 

 

지은지 180여년된 건물들이라 벽면에는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아치형 내부벽은 일본군들이 메운것이라 함.

 

 

1층은 전부 저렇게 메웠다.

 

일부 폐허가 된 건물 잔해들.

 

위안부 숙소 1동( 총 3개의 단층 적벽돌 건물로 저 문하나가 방 하나). 공동 목욕탕및 공동 화장실 사용 흔적

 

두번째 위안부 숙소 두번째 건물.(일자형 구조)

 

숙소 면적은 방마다 약간씩 달라 보였으며 1칸당 면적은 커봐야 3평 정도.

내부는 창문이 있으나 어둡고 침침했으며 벽 한쪽켠에 단을 쌓아 만든 침상(?)하나와 목재 책걸상 하나가 살림살이의

전부인듯..

 

거의 원형(?)대로 보존되어 있는 방의  한쪽 벽면에 있는 낙서.

한글과 한문으로 소녀시대라고 써 있는데 후에 누군가 이곳을 방문해서 기념으로 낙서해 놓은듯.

 

물통과 빈병이 놓인 자리가 일본군들이 바로 위안부를 안고 뒹굴던 침상. 길이 2.5m, 폭 1.5m (?)

 

 

출입문 옆의 저 책상(?)이 유일한 가구.

 

방 한칸의 크기라고 해봐야 가로 폭 2.5m, 세로 폭 4m 정도 되어 보였음.

 

이런 방에서 얼마나 많은 고통과 어려움 속에서 고향에 두고온 부모 형제 친구 생각에 눈시울을 적셨을듯 생각하니

애석해지고 숙연해진다.

 

위안부 숙소와 마주보고 있는 일본군 숙소.

지금도 작업 인부들이 숙소로 사용하는듯 사람이 사는 흔적이 있음.

 

 

 

 

외부와는 철조망으로 단절되어 있다.

 

전차 격납고로 사용됐던 흔적들.

 

 

건물 귀퉁이마다 설치되어 있는 망루 초소. 감시원들 대부분을 조선에서 징용한 조선인들로 배치했는데 이들은 대부분 나중에 전쟁이 끝난후 전범으로 처리되어 불구의 원혼이 된다.

 

인도네시아 독립영웅이 된 양칠성도 포로 감시원 출신.

 

 

당시 군 사령부 건물 흔적.

 

 

 

포로 수용소 전체 조감도 모형.

 

당초 군사시설로 지어진 건물이기 때문에 외곽에는 전차 격납고와 부대시설들이 있었다.

위안부 숙소는 건물 외곽의 왼쪽에 있는 길게 배치된 3동의 건물임.